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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분(公憤)과 본분(本分)

2016.11.15. [시론] `불확실성`이 가장 큰 공포다. 디지털타임스

2016년 대한민국은 10월 24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최순실씨의 컴퓨터를 입수해 분석한 기사를 쏟아낸 이후, 주요 미디어는 최순실 관련 기사를 메인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미디어가 움직이자 여론은 급변했다. 전쟁과 쿠데타, 그리고 독재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니 로봇의 시대가 됐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로봇 이야기가 아니라, 최순실이라는 해괴망측한 인물에게 조종당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야기라 씁쓸하다. 11월 6일자 뉴욕타임스 만평 내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무리라는 수순이 아닌 확장과 전개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도 바뀌었다. 이제는 박근혜 게이트다. 박근혜 게이트는 이제 시작이다. 주인공이 바뀌었으니, 각본의 흐름도 달라진다. 주인공에 맞게 조연이 새로워져야 하고, 등장인물도 변화하게 된다. 최순실과 주변인물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부역자들로 극은 새롭게 써져야 한다.

무슨 무슨 게이트라는 사건이 터지면, 늘 따라 나오는 것이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이는 대통령의 사임을 가져온,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진 최초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가져 온 워터게이트 사건은 언론, FBI, 검찰, 그리고 연방 대법원의 합작품이다.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3년간의 지난한 취재를 했고, 워싱턴 포스트는 강도 높은 세무 조사와 같은 외압을 견뎌냈다. FBI는 단순절도 사건이 아니라는 판단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특별검사는 엄정한 수사를 했고,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부적절한 명령에 항의했다. 결국 이 둘은 사임했다. 닉슨 사임의 결정적 이유인 백안관 녹음테이프 제출 판결은 연방 대법원에서 만장일치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그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박근혜 게이트 역시 이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언론. 이제 최순실 게이트라는 문구를 던지라. 아직도 정수가 아닌 변두리만 헤맬 것인가? 아직 늦지 않았다. 박근혜 게이트는 이제 시작이다.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에 대한 시민의 비판이 많다. ‘기레기’라는 모욕적인 단어가 자연스럽다. 그동안 어디 있다가 이제야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느냐고 꾸짖는다. 전혀 이상할 것 없다. 받아쓰기 하는 기자. 대통령에게 질문도 못하는 기자. 권력을 조준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부역하는 기자. 당신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당신들의 진정한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객관성, 공익성, 공정성, 신뢰성, 정확성이라는 옷을 다시 꺼내 입어야 한다. 최순실 부역자를 밝혀야 한다. 무엇이 박근혜 정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파헤쳐야 한다. 기억하라.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사건을 3년간 취재했다.

검찰. 도대체, 언제까지, 어디까지 무너져야 하는가? 사건이 드러난 초기부터 압수수색은 커녕, 최순실 입국 시 신병확보도 하지 않은 그 관용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기업 수사 정보 누출 의혹부터 늑장 수사에 우병우 황제 조사까지. 도대체 검찰,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들에게 이런 일을 맡긴다는 것이 합리적인가?

정치권. 닉슨 재임 당시 야당이었던 미국 민주당은 대선 후보자 간의 분열과 부통령 후보 사퇴 등으로 사분오열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도청 사건의 핵심을 건드리지도 못한채 결국 압도적인 표차로 닉슨 대통령에게 재임을 헌사하게 된다. 한국의 민주당(야당)도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박 대통령 탈당, 검찰 수사 수용, 책임총리제, 거국내각구성 등 주장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불확실성은 가장 큰 공포다. 공포를 없앨 수 있는 길은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차기 수권정당을 목표로 하는 야당의 역할이다. 이제 전대미문의 새로운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이 아닌 국회가 총리를 뽑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야 합의로 총리를 추천해야 하는데, 셈법이 각각 달라 합의가 쉽지 않다. 책임총리를 추천하는 과정도 쉽지 않지만, 그 이후도 걱정이다. 여당. 더 할 말이 없다. 친박과 비박이 자기희생 없이 자기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으니. 정당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워터게이트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건에 끼지 않은 적이 없었던 조력자, 기업. 당신은 피해자인가? 수혜자인가? 최순실에게 속된 말로 ‘삥 뜯긴’ 기업. 나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이해 못하는바 아니다. 정치권력의 실세가 어찌 만만하겠는가? 그러나 동의할 수는 없다.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의 매각과정에서 발생한 노조와의 마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인한 지배구조 변화. 이러한 문제 해결책과 기부금과는 정말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인가? 형제의 난과 롯데의 기부금은 정말 무관한 것인가?

불쌍한 시민들. 그러나 시민은 위대하다. 역사의 주체는 시민이다. 그리고 결국 역사는 진보한다. 민주주의. 이것만이 정답이다. 대한민국은 다시 민주주의로 일어설 것이다. 반복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은 그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던 결과일 뿐이다. 언론, 검찰, 정치인, 그리고 기업. 당신의 일을 하라. 시민, 우리는 민주주의의 길을 갈 것이다.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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