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메달의 심리학

March 7, 2018

2018.03.02 [디지털산책] 올림픽 메달의 심리학. 디지털타임스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성대하게 치러진 다음 날인 9일에 열린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대한민국 사격의 간판스타 진종오 선수는 우리나라에 첫 메달을 선사할 것으로 예측됐다. 아쉽게도 1등에게 3.7점이 뒤진 점수로 은메달을 따자 진선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메달을 못따 죄송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큰 인기가 없지만 북미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계 스포츠는 아이스하키이다. 미국의 4대 스포츠이자 특히 캐나다에서는 독보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북미하키리그(National Hockey League, NHL)에서 캐나다 팀이 결승에서 패할 경우 폭동이 일어날 정도로 캐나다인의 아이스하키 사랑은 유별나다. 오랜 라이벌인 미국과 캐나다가 이번 평창 올림픽 여자 경기 결승에서 맞붙어 승부샷까지 가는 접전 끝에 미국이 금메달을 따게 됐는데, 메달 수여식에서 한 캐나다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자마자 바로 벗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메달 수여식 후 있었던 인터뷰에서 그 선수는 “원하던 금메달을 따지 못해 너무 힘들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어느 선수가 금메달을 놓치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오직 올림픽이라는 한 길을 달려왔던 선수들이 막판 종이 한 장의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을 때의 충격을 그 누가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번 평창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면서 이전과는 눈에 띄게 달라 보였던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메달의 색깔에 구애됨 없이 최선을 다한 경기에 대한 만족과 기쁨을 표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니 우리 젊은 선수들이 대하는 올림픽과 금메달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1995년 미국 코넬대의 길로비치(Thomas Gilovich)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재미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92년 하계 올림픽’과 올림픽과 같은 방식으로 뉴욕에서 매년 열리는 대회인 ‘1994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게임’에서 메달리스트들의 표정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결과가 참 흥미롭다. 이들은 게임이 끝난 직후와 메달을 받기 위해 올라간 단상에서 선수들의 표정이 어떤지를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두 상황 모두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세 번의 실험에서 총 93명의 은메달 리스트와 79명의 동메달 리스트의 표정을 분석했는데, 이러한 결과는 매우 일관성 있게 발생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연구자들은 은메달을 받은 선수는 ‘내가 만일 금메달을 땄다면?’이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되고, 동메달을 받은 선수는 ‘내가 만일 동메달도 따지 못했다면?’이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는 설명을 통해 이를 분석한다.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상상 가능한 대안을 생각함으로써 만족감의 정도가 달라지는 이러한 상황을 연구자는 ‘사실에 반대되는 생각(counterfactual thinking)’이라고 정의하고, 기대치가 낮은 사람이 실제로 낮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기대치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사람이 그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경우보다 만족도가 높음을 증명하고 있다.

 

기대와 만족은 이렇게 반비례로 존재하게 된다. 너무 큰 기대를 품은 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만족감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고, 반면 기대하지 못한 결과를 달성하게 되면 만족도는 증가 된다. 받아도 별로 기쁘지 않은 은메달과 반대로 받아서 너무 기쁜 동메달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기대감과 만족감이 가져오는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것으로 모든 선수의 반응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국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을 대표하는 ‘빙속 여제' 이상화 선수는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확정지은 직후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울먹이면서 태극기를 들고 빙판을 도는 그녀의 모습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서러움과 회한(悔恨)을 나타낸 것이었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보다는 지난 시간 자신을 되돌아보며 젊음과 정열을 불태운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한 감동의 눈물은 아니었을까? 자신에게 엄격했던 그동안의 긴장이 장정(長程)을 끝냈다는 안도와 함께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과 열렬한 응원을 보낸 국민에게 보내는 감사의 인사는 아니었을까?

 

큰 기쁨과 감동을 안겨주었던 평창 올림픽은 끝났지만, 평창 올림픽이 가져다 준 ‘기대하지 않았던’ 성공적인 결과는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한다. 2011년 7월 6일 123차 IOC 총회에서 평창이 제23회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이래로 약 6년 7개월 동안 평창은 그리고 대한민국은 오직 이 날만을 기다렸다. 17일 간 펼쳐진 올림픽은 협력과 상생의 축제임과 동시에 전 세계 사람들과 국가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꿈의 구현이었다. 이제 역사와 추억이 되어버린 평창 올림픽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남긴 채 뒤안길로 사라졌다. 올림픽이 주는 의미는 단지 메달에 있지 않다. 메달을 목에 건 선수나 그렇지 못한 선수 모두 우리의 영웅이며 희망이다. 인류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온 인류에 전해준 모든 선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정동훈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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