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댓글이 민주주의다

June 7, 2018

2018.04.24. [디지털산책] 매크로 댓글과 민주주의. 디지털타임스

 

뉴욕 타임스지가 “찰나적인 것을 통해 영원을 보도록 했다"라며 극찬한 월터 리프만은 저널리즘과 여론의 본질적인 문제를 언급할 때 늘 거론되는 저널리스트이자 사상가이다. 신문이 주류 미디어였던 1900년대 초반 리프먼은 “신문은 민주의의의 성경이며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행동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며, 주권이 입법부에서 여론으로 옮겨간 이상 “공중은 정확하고 신뢰할만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상가가 바라보는 관점은 시대를 관통하고 공간을 초월한다. 그의 주장은 그대로 2018년 대한민국을 비추어 보아도 전혀 거리낄게 없다.

 

지난 두 주 동안 ‘남북정상회담’이나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로 시험발사 중지’ 뉴스와 거의 동급으로 취급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루어졌던 ‘드루킹 사건’은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여론 조작’이라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론이란 사회에 영향을 주고, 이해관계가 있는 문제에 관해서 사람들이 갖는 의견의 총체 혹은 일반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의미 있는 숫자의 사람들이 표현한 신념의 복합체로 정의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여론이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지는 별개이다.

 

1922년 발행됐음에도 여전히 중요한 참고문헌으로 읽히는 책 ‘여론’에서 리프만은 국민의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고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가정을 하는 민주주의는 신화라고 비판하며,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여론은 일종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즉 정형화라고 정의한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과 맥을 같이 하는 이 개념은 자신의 태도나 가치관과 유사한 정보를 더욱 신뢰하고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 댓글은 개인이 갖고 있는 선유경향(先有傾向)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뉴스가 갖고 있는 신뢰성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시민은 어디에서, 누구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저명한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2017년에 전 세계 38개국의 시민을 대상으로 언론 신뢰도를 조사를 했는데, '언론이 정치 보도를 공정하게 잘한다'고 답한 비율에서 한국은 27%에 머물러 38개국 중 37위를 했다. 이렇게 신뢰할 수 없는 대한민국 언론에 대한 시민의 행동이 인터넷 댓글과 같은 정치 활동으로 연결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참여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다.

 

먼저 반성할 곳은 정치권이고, 언론이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매크로 댓글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암묵적으로 이를 묵인한 포털의 잘못이다. 유권자는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허용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내 의견을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자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불신하는 언론에 맞서 자신의 뜻을 펼치는 활동이 왜 잘못인가? 거짓된 정보를 악의적으로 전달하면 형법이나 민법으로 처벌하면 되는 것이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온라인 상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것에 대해서 위헌 판결을 내리며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을 상시 허용했고, 반면 정보통신망법 제70조는 온라인에서의 명예 훼손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어 놨다.

 

이런 점에서 얼마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언급한 온라인 상의 조직적인 선거운동 활동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은 반민주주의적이다. 또한 국회의원이 한 말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한 의원의 “대규모적이고 여론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이면 불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귀를 의심하게 한다. 이는 여론 형성의 민주적 과정을 왜곡하고 편향되게 바라보는 잘못된 이해의 결과이다. 기본적으로 여론 형성과정은 대규모적이다. 그것이 미디어의 힘이다. 디지털 시대에 와서 매스미디어의 힘이 포털 뉴스 또는 댓글의 힘으로 바뀐 것일 뿐. 그 형성 과정은 동일하다.

 

이번 사건에서 핵심 키워드는 ‘매크로 댓글’로 인한 여론조작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은 ‘댓글’로 치환하며 민주주의의 정당한 정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위협을 가한다. 댓글 활동 자체는 비민주적이거나 불법적이지 않다. 신문 기사도 여론이고, 댓글도 여론이다. 언론사가 내보내는 어뷰징 기사를 포털사에서 관리해야 하듯이, 매크로 문제 역시 포털사에서 관리해야 하는 문제이다. 리프만은 “진실과 뉴스는 동일하지 않다"고 말하며, 인위적인 검열, 언론인의 제한된 사회적 접촉과 시간, 편견과 이기심 등이 사실 기반의 여론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여론 형성에 있어 더 큰 문제는 특정 언론사의 간부급 기자가 스스로 작성하고 승인까지 한 기사가 오보로 판명된 것이고, 특정 사안에 대한 세부 사항을 알지 못하는 유권자들의 의견을 물어 본 후 이를 여론으로 말하는 여론조사가 더 유해하다.

 

“공중은 정확하고 신뢰할만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리프만의 주장을 통해 우리나라 언론사와 방송사의 뉴스 보도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며, ‘조직적 댓글’이 ‘여론 조작’이라는 잘못된 등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동훈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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