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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으로부터의 해방

2016.10.10. “사모님은 이제 쉬세요” 부엌으로 들어온 ‘요리 로봇’. 한경비즈니스

쉐프 전성시대이다. 케이블 방송에서 하나 둘 늘어가던 요리 프로그램은 스타 쉐프를 만들어냈고, 이제는 지상파 방송에서도 쉐프가 주인공이거나 조연 역할을 하며 프로그램을 이끄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그만큼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의미이다. 물론 요리는 늘 인류의 관심사였다. 생존을 위해서 그리고 노동을 위해서. 그러나 이제 요리의 의미는 달라졌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 그리고 멋진 인생을 위해서. 그러나 맛을 보기 위한 요리는 늘 행복하지만, 그 요리를 만들기 위한 과정은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노동이자, 고난한 과정이다. 한편으로는 재료를 구입해서부터 설거지까지의 과정이 노동의 연속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맛있는 요리를 따라하고 싶은 행복한 과정이다. 요리는 노동인가 즐거움인가? 인간이 요리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쉐일라 르웬핵(Sheila Lewenhak)이 쓴 ‘여성 노동의 역사’에서 여성 노동의 처음은 수렵과 채집이고, 새로운 기술 혁명에 의한 여성 해방의 중요한 지점도 가사 노동이다.

장하준 교수는 그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고 주장한다. 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이 가져 온 가사 노동 시간의 단축은 경제적, 사회적 영향이 인터넷보다 크다는 것이다.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집안일을 혁신적으로 단축한 가전제품은 가사 노동자와 같은 직업을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고,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촉진시켰기 때문이다. 전기세탁기, 식기세척기, 진공청소기 등 가사에서의 해방을 얘기할 수 있는 가전제품이 많이 있지만, 정작 요리를 위한 기술의 진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빨래를 하기 위해 세탁기에 옷을 넣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고,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고 역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고, 진공청소기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청소가 자동으로 되는 것에 비해, 요리는 이에 비해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요리 역시 버튼 하나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세상이 올 것 같다. 가전사들과 로봇회사들이 부엌과 레스토랑의 혁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부엌에서의 변모를 살펴보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몰리 로보틱스(Moley Robotics)와 셰도우 로보틱스(Shadow Robotics)가 개발한 주방용 자동 조리 로봇 몰리(Moley)이다. 2015년 4월 독일에서 개최된 하노버 메세(Hannover Msse) 산업 박람회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로, 5월에는 ‘CES 상해’에서 ‘Best of Best’ 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1월에는 ‘AI & Robotics Award’에서 파이널리스트에 오르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은 제품이다. 몰리는 크게 로봇과 인공지능이라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129개 센서와 24개의 이음새 그리고 20개의 모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팔처럼 생긴 로봇 팔 2개가 움직이며 요리를 한다. 로봇 팔의 움직임은 마치 사람의 팔인 것처럼 정교한데, 그릇을 옮기고, 소금이나 후추와 같은 양념통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스프를 휘저으며, 때로는 칼을 공중에서 한 바퀴 돌리며 야채를 썰 준비를 하는 장난기 많은 청년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야채를 써는 것과 같은 재료 손질에서부터, 조리 도구를 고르고, 사용자가 원하는 음식에 맞는 요리를 하되, 재료 선택, 소요 시간, 칼로리 설정 등 단순히 맛뿐만이 아니라 사용자 친화적인 맞춤형 요리를 제공한다. 또한 인공지능 기능을 통해 레시피 라이브러리를 운용하기도 한다. 몰리는 2천 종류가 넘는 레시피를 갖고 있는데, 사용자들이 제작한 다양한 레시피를 공유하고, 원하는 레시피를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는 요리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몰리는 사용자의 노동력을 최소화할 수 있게 요리 전 과정을 진행할 수도 있고, 사용자 주도의 요리를 하는데 있어 보조 역할을 할 수도 있게 프로그래밍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요리 뿐만 아니라 자동으로 식기세척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설거지까지 해결되고, 마지막으로 식기를 정리할 수도 있으니, 이정도면 정말 부엌에서의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레스토랑으로 가보자. 스파이스(Spyce)는 MIT 학생들이 만든 완전 자동화 레스토랑이다. 보통 로봇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는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짙지만, 스파이스는 현지에서 잡은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저렴하고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세계 최초의 완전 자동화 레스토랑을 표방한다. 사실 자동화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으로 적지 않은 곳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부엌에서 로봇이 요리를 하는 자동화의 의미가 아니라 요리된 음식을 각 테이블에 이동하는 의미의 자동화를 소개하고 있어, 이를 혁신적인 서비스로 소개하기에는 기술적 진보가 제한적이다. 그러나 스파이스의 경우는 메뉴를 주문하면 응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요리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조리에서부터 식사 제공까지 모든과정을 완전 자동화한 무인레스토랑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냉장고와 식기세척기, 조리기기와 로봇 쉐프가 하나의 기기에 담겨 있어서(all-in-one) 요리사가 필요 없고, 프로그래밍을 통해 일관된 맛을 제공할 수 있으면서도 대용량의 조리를 빨리 진행할 수 있기때문에 상업용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스파이스는 열린 주방의 형식을 띄고 있어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를 고객들이 밖에서 볼 수 있게 했다. 이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자 고객의 안심을 가져오는 사례일 수 있는데, 흥미로운 광경으로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리 과정 전체를 공개함으로써 레스토랑을 방문한 고객이 자신들이 먹는 음식을 안전하게 조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배달 요리는 어떤가? 피자는 배달 요리의 대명사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느 나라에서도 배달을 생각하면 피자가 떠오른다. 줌 피자(Zume pizza)는 스타트업의 도시인 실리콘 밸리의 마운틴 뷰(Mountain View)에서 피자를 만드는데 로봇을 활용한 떠오르는 기업 중 하나이다. 이 기업 역시 스타트업인데, 마이크로소프트에서 X박스 게임 책임자이자 후에 유명한 소셜 네트워크 게임 개발업체인 징가의 사장을 역임하기도 한 알렉스 가든(Alex Garden)이 공동창업을 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줌 피자의 핵심은 배달하는 차에서 피자가 구워진다는 것이다. 보통 45분이 걸리는 배달 시간을 22분으로 줄인 것도, 바삭바삭한, 이제 막 구운 피자를 먹을 수 있는 것도 모두 프로그래밍 된 로봇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부엌에는 요리사와 로봇이 협업을 한다. 요리사는 숙성한 밀가루 반죽으로 도우를 만든다. 그리고 페페와 존(Pepe and John)이라는 이름의 로봇은 도우를 받아 그 위에 토마토 소스를 뿌리고, 다음 단계에서 로봇 마르타(Marta)가 소스를 골고루 핀다. 요리사는 토핑을 함으로써 마무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로봇 브루노(Bruno)가 오븐에 집어넣음으로써 부엌에서의 일은 끝난다. 피자는 오븐에서 90초간 일부분만 구워진다. 배달 음식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핵심이다. 빈첸시오(Vincencio)라는 이름의 로봇이 피자를 배달차에 올리면 요리사는 목적지 도착 4분 전에 피자를 3분 30초간 굽고 30초간 식힌 후 전달한다.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미치기는 하지만, 앱으로 주문해서 배달을 받기까지 단순화와 즉석 제조한 것과 같은 맛을 보장받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부엌에서 사용되는 제품들의 디지털화도 요리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삼성은 디지털 커넥티드(connected)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스마트 냉장고를 소개하고 있는데, 사물인터넷 기능을 지향하고 있어 단순히 보관의 역할을 뛰어넘어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로의 확장을 기대한다. 스마트폰이 전화 본연의 기능을 뛰어넘어 손안의 컴퓨터 역할을 하듯이, 냉장고도 어떻게 진화할지 흥미진진하다. 금년에 나온 냉장고의 특징을 보면, 냉장고의 미디어화가 눈에 띈다.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부엌을 요리의 공간만이 아닌 오락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엔터테인먼트 환경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스마트홈을 지향하는 가정에서는 LG의 스마트씽큐 허브가 매력적일 것이다. 앱으로 작동하는 이 제품은 냉장고에 있는 음식물의 유통기한을 알려주고, 세탁기에 있는 세탁물의 진행상황을 알려주며, 습도와 온도를 감지해서 최적 환경을 만들어주고, 로봇청소기를 통한 원격청소 등 가사노동에서의 해방을 위한 올인원 리모트콘트롤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2015 일·가정 양립지표'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가사노동 시간이 남자는 40분, 여자는 3시간 14분, 그리고 비맞벌이 부부의 경우 남자는 47분, 여자는 6시간 16분으로 조사됐다. 가사노동 시간 전부가 부엌일만 포함되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일상을 생각해보면 식사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적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자들이 부엌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당장 남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그리고 인간이 부엌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해답을 제공할 것이다.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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