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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과 신앙

2018.02.05 [디지털산책] 암호화폐 과도한 몰입 이유. 디지털타임스

카카오는 2013년 자회사를 통해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에 2억원을 투자한 이후 현재 두나무의 2대 주주로 있다. 넥슨은 2017년 9월 지주회사인 엔엑스씨(NXC)를 통해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빗의 지분 65.19%를 인수했다. 최근에는 온라인 쇼핑업체 위메프가 코빗과 암호 화폐로 물건을 구매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아마도 엔엑스씨가 위메프에도 1000억 원을 투자한 주요 주주이기 때문에 두 회사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는 것 같다. 그리고 네이버는 자회사인 라인을 통해 일본 내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할 '라인파이낸셜'을 설립하고, 며칠 전인 1월 31일 일본에서 암호화폐 거래소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국내 굴지의 유력 인터넷사들은 이렇게 암호화폐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반면 구글은 지낸 해 구글의 기술이사인 레이 커즈웨일(Ray kurzweil)이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에 비추어 보아 딱히 암호화폐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같지 않다. 또한 페이스북은 1월 31일에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신규상장(ICO) 등 모든 암호화폐 관련 광고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굴지의 유력 인터넷사가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든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이 말이 미국의 회사가 암호화폐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곧 암호화폐신규상장을 할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Telegram)에 투자를 준비하는 실리콘밸리의 움직임을 보면 단순한 관심이 아닌 ‘폭발적'인 광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말이다.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처럼 국가마다, 기업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천양지차이다. 장기적으로 육성해야 할 기술로 바라보기도 하고, 투기이므로 당장에 금지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암호화폐에 쏟는 일반인의 과도한 몰입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는 기술적 이해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용어가 됐다. 익숙하다는 말은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부정적이기도 하다. 암호화폐 가치가 급격히 상승한 최근 1년 사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고, 연일 계속되는 뉴스와 그 뉴스에 뒤따르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광고에 사람들은 익숙해졌다. 이미 암호화폐가치상승 그래프에 현혹되었고, 그 그래프 사이 요동치는 급락과 급상승에 익숙해졌다. 익숙함은 둔감화(desensitization)를 가져온다. 둔감화와 관련된 부정적인 대표적 예는 폭력이다. 폭력 영상물을 자주, 반복적으로 노출할 경우 폭력에 대한 허용도가 높아지고 폭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희생자에 대한 동정심과 폭력의 심각성이 낮아질 수 있다. 매일 소개되는 암호화폐에 대해서 기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모르지만, 언론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니 익숙하고 친숙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암호화폐가 갖는 위험에 대해서는 둔감해지게 된다. 마치 폭력 영화를 자주 보면 폭력에 대해서 둔감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또한 환경의 영향을 받는 인간의 속성 상, 언론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암호화폐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또는 실제로 많지는 않지만, 많다고 인식되면 인식될수록 위험을 덜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사무실 안에서 열 명의 직원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어느 순간 문틈을 통해서 연기가 밖에서 들어오면서 무엇인가 탄 냄새가 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그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나 혼자 있었다면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밖에 나가볼 텐데 모든 사람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일을 하고 있으니 나 역시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된다. 나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위험 인식과 군중이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위험 인식은 큰 차이가 난다. 마치 위험의 크기가 나누어지듯이, 여럿이 함께 있으면 위험을 잘 느끼지 못한다. 혼자 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위험 인식 정도가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 생기겠어?” 많은 사람이 함께 하고 있다는 안정감과 기대감으로 인해 위험을 느끼는 정도는 갈수록 떨어지게 된다.

암호화폐는 철저히 인간의 믿음에 관한 영역이다. 암호화폐가 화폐로서 기능을 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신앙을 바라보는 것과 동일하다. 현재 화폐 발행은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다. 누구나 화폐를 발행할 수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 화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만이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는 것이다. 미래에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그럴 수 없다는 믿음은,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과 그렇지 않다는 믿음과 동일한 등식이다. 신이 존재함을 증명 할 수는 없지만, 신앙인들은 많다. 암호화폐가 중앙은행 발행 화폐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많다. 유일한 차이는 신을 믿는다고 해서 개인적인 또는 사회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암호화폐가 중앙은행 발행 화폐를 대신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암호화폐에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동일한 가치로 투자(또는 투기)를 할 경우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믿음의 문제는 극복하기 어렵다. 원래 갖고 있는 믿음을 지지하는 증거만을 수집하고 반증하는 증거를 배제하는, 즉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더 강화되기에 암호화폐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다. 냉철하고 현명한 판단이 요구될 때이다.

정동훈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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