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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 기술의 향연, 올림픽

2018.02.21 [사이언스프리즘] 인간을 위한 기술의 향연 '올림픽'. 세계일보

평창 올림픽이 한창이다.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만해도 성공적인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던 불안한 올림픽이었지만, 이제 평창은 ‘하나 된 열정’으로 그리고 ‘평화 올림픽’으로 확실하게 자리했다. 올림픽이 갖고 있는 함의는 단지 스포츠에만 머물지 않는다. 올림픽이 열리는 현장은 국제정치와 외교의 장으로, 그리고 문화와 기술의 전시장으로 개최국의 역량을 한껏 뽐내는 자리이다. 평창 올림픽은 유구한 역사가 흐르는 ICT 강국인 우리의 문화와 기술을 전 세계에 소개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올림픽 개막식에서 보여준 인간과 기술의 조화는 다가오는 미래를 어떻게 맞이해야할지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준다. 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오륜 공개와 성화 점화 순간. 모든 올림픽은 이 두 순간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곤 한다.

평창 올림픽에서는 드론이라는 최신 기술이 고스란히 담긴 현란한 쇼로 오륜을 선보였다. 드론쇼는 이제까지 약 130회의 쇼를 진행했을 정도로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갖고 있는 인텔이 주도했지만, 1218개의 드론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생각만큼 단순한 일이 아니다. 3D 애니메이터과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통해 드론의 움직임과 빛의 조합을 사전에 프로그래밍한 후 실제로 구현해야 하는데, 모든 드론이 서로 겹치지 않게 동시에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드론으로 쇼를 하는 것은 매우 고난도의 작업이다.

게다가 플라스틱과 발포고무로 만든 직경 15센티미터에 330그램밖에 안 되는 드론은 춥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평창에서 정밀하게 구현되기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실 이번에 우리가 본 드론의 오륜 영상은 2017년 12월에 사전 녹화된 영상이고, 원래 계획은 개막식 당일 개회식장에 300개의 드론으로 오륜기를 띄우려고 했다. 평창에 오기 전, 핀란드의 험한 날씨에서 테스트를 진행할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지만, 결국 당일 라이브 쇼는 취소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드론쇼는 불가항력적 상황에 맞닥뜨리기 쉽다.

이번 드론쇼가 반가운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초로 시범 운용한 5G 네트워크를 드론쇼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지연시간 없이, 실시간으로, 그리고 무한한 디바이스에 연결하게 만드는 5G 네트워크는 사물인터넷과 스마트 시티를 만드는 핵심 인프라이다. 지능정보화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발전해야겠지만, 5G의 기반 없이는 가상현실이나 인공지능 등 그 어느 것도 상용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올림픽 개막식의 드론쇼는 우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반면, 성화 점화 순간은 인간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전해진 순간이었다. 수많은 기술이 펼쳐진 후에 펼쳐진 김연아의 안무는 오직 인간의 몸 하나만으로 전 세계에 전하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였다. 은반 위에서 펼쳐진 30초의 마법은 인간의 상상력과 꿈을 펼쳤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숨죽이며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30년 전 서울 올림픽 개막식 때 보여주었던 굴렁쇠의 울림 그대로.

올림픽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쿠베르탱이 주창한대로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평창 올림픽은 개막식을 통해 인간과 기술의 조화라는 점에서 올림픽 정신을 구현한 성대한 쇼를 보여주었다. 드론 몇 대를 동시에 더 날게 하고, 더 정교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을 위한 기술의 구현 여부이다. 오륜기를 상징하는 강원도에 사는 다섯 아이가 평화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여정과 국경이나 종교의 장벽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꿈꾼 노래 ‘이매진’, 그리고 피겨 스타의 아름다운 움직임은 그래서 더 의미가 깊다. 인간과 기술이 어떻게 공존해야하는지 좋은 사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2018년 평창 올림픽 개막식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정동훈 광운대 교수·인간컴퓨터상호작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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